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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우리는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의지)

by 마티아2002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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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윌북

 

질 볼트 테일러 박사(Jill Bolte Taylor)는 미국의 뇌 과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녀는 인디애나 의과대에서 신경해부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96년,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을 겪으며 뇌 기능이 하나둘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관찰한 최초의 뇌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뇌에 대한 깊이 있는 자각을 얻었고, 개두 수술과 8년간의 회복기를 거쳤습니다.

테일러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을 출간하고, TED 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³. 그녀의 이야기는 뇌 과학과 인간의 정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내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가령 침대에서 몸을 들어 올리는데 필요한 힘을 확보하기까지 계속해서 몸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런 흔들기 단계에서는 흔들기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일어나 앉으려는 최종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현재의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므로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만약 일어나 앉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면, 내 무능함에 실망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

하고자 하는 행동을 아주 작은 단계들로 나누어 하나하나 실행해서 성공을 거두면 축하의 의미로 잠을 자고 다시 시도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조금씩 몸을 흔드는 폭을 넓혔다. 몸 흔들기에 충분히 능숙해졌다 싶으면, 다음에는 더욱 열정적으로 몸 흔들기를 시도했다. 편안하게 몸을 흔들 수 있는 단계가 되자 몸을 위로 드는 동작에 도전했다.

오직 몸을 들어 올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계속 연습하다 보면 일어나 앉는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작은 성공을 이루며 만족을 느꼈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수준에 완전히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우아하게 통제력을 발휘해 가며 동작을 반복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의 새로운 능력 습득이 가능했다. 사소한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고, 그렇게 힘을 쓰고 나면 수면으로 기력을 보충해야 했다. 다시 유아기로 놀이가 사실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할 판이었다. 나는 완전히 기본으로 돌아갔다. 신체의 회복 과정은 정상적인 발달 단계와 비슷했다. 각각의 단계를 익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하려는 의지였다.

일단 시도해야 했다. 시도한다는 것은 뇌에게 '이봐 이쪽 연결이 중요해, 연결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이다. 수천 번을 시도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다가 어느 순간 약간의 성과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았다면 영영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나 모두 극도의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회복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고통받는 동안 어머니가 가장 자주 한 말은 "더 나쁠 수도 있었어."였다. 그녀는 포기할 줄 모르고 끝까지 친절했다.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회복 과정을 함께했으며,모든 순간이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으로 빛났다. 우리는 발전해 가는 나의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축하곤 했다. 어머니는 어제는 내가 이것밖에 못했는데 오늘은 이만큼이나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음 단계로 나갈 때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금세 알아챘다. 어머니는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내게 명쾌하게 설명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시켰다. 나의 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뇌졸중 환자 중에는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일상으로의 복귀

3월 중순이 되자 어머니는 내가 다시 혼자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도와주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녀는 필요할 때 전화만 하면 언제든 첫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겠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독립적인 생활 영역이 넓어졌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기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신체 능력을 이야기하자면, 일주일에 대여섯 차례 하루 5킬로미터씩 손에 아령을 들고 걷기를 4년 동안 하자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4년 차에 내 뇌는 여러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 냈다. 가령 파스타를 끓이면서 전화를 받았다. 이전까지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가진 주의력을 총동원해야 했다. 회복 기간 동안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뇌졸중 직후 내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항상 떠올렸다.

그리고 회복하려는 내 시도에 응답해 준 뇌에게 하루에도 수천 번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내 인생에 고마워하는 쪽을 택했다. 내가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능력은 수학적 사고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뇌졸중을 겪고 4년째에 뇌가 덧셈에 다시 반웅을 보이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더 뺄셈과 곱셈이 가능해졌다. 나눗셈은 5년 차가 될 때까지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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