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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뇌졸증과 수면의 치유력

by 마티아2002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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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질 볼트 테일러 박사 지음, 윌북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

뇌를 기증해달라는 요청을 몇몇 회원들이 몹시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회원들이 맙소사! 내 뇌를 달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뇌 기증 문제를 꺼낼 때가 되어 장내의 긴장감이 높아지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열게 만들어 메시지를 부담 없이 전달해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끊임없는 뇌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자 그 자리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좌뇌의 언어 중추가 침묵하고 삶의 기억들이 저편으로 멀어지면서 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내 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듯했다.

몸의 상태가 이렇게 변하자 내 삶을 규정하고 지휘하기 위해 뇌가 항상 챙기던 외부 세계의 수많은 일들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일깨워주던 뇌의 재잘거림도 잠잠해졌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다. 순간순간 고동치는 심장박동의 리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조직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내 몸과 처음으로 일체감을 느꼈다. 내가 지성적 능력을 지닌 수많은 세포들로 가득찬 존재임을 깨닫게 되자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사라지지 않는 혹독한 머리 통증은 힘겨웠지만, 나는 정상적인 지각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의식이 평온한 상태로 빠져들자 마치 하늘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세포들의 거대한 덩어리인 내 몸은 그저 멋진 임시 거처인 셈이었다.

 

깊은 침묵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죽을 때 깨어 있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멋진 마지막 변화의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1996년.1996년 1210일 정오가 가까운 시각, 내 몸을 이루는 분자들의 전기적 생기가 희미해지고 나의 인지적 뇌가 신체 작동을 통제하던 연결 끈을 놓았다. 조용하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신성한 보호막 속에 들어앉은 나는 커다란 에너지가 내 안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이 흐느적거렸고 의식이 느린 속도로 떨렸다. 시각과 소리, 감각과 냄새, , 두려움이 내 안에서 모두 사라졌다. 정신과 신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 마침내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내 좌뇌가 파괴되었다면 오른쪽 뇌는 누구지?

나는 질 볼트 테일러야. 신경해부학자이고 이 주소에 살며 연락처는 이렇게 되지하고 말하는 언어 중추가 침묵하자 더 이상 내가 그녀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참으로 기이한 인식의 변화였다. 나에게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려주는 감정 회로와 그녀의 비판적 판단 패턴을 알려주는 자아 중추가 없어졌다. 나는 더 이상 그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만만치 않은 양의 세포가 파괴되었으므로 다시 그녀가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삶을, 그녀의 관계나 성공과 실수를 몰랐으므로 그녀의 결정이나 스스로 설정한 한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바로 누구든 언제라도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반과도 같은 경험이 우뇌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언제라도 스스로 뇌의 그 부분에 접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회복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야 할 이유가 보였다. 그러자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보였다. 평화는 생각하기 나름이야. 평화를. 이루려면 지배적인 왼쪽 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만 하면 돼. 어떤 식으로 규정하든 회복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흥분했고 적절한 수면으로 균형을 맞춰주면 기적이라 할 만한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수면의 치유력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머니와 나는 뇌 체계를 가급적 빨리 자극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깨어. 있을 때의 노력과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회복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몇 달 동안 나는 텔레비전, 전화, 라디오는 전혀 접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기력을 바닥 내고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학습 의욕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성공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매일 내가 거둔 성취를 축하하며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내가. 걷거나 말할 수 있는지, 내 이름을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숨 쉬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살아 있음 자체를 기뻐했다. 그리고 함께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으면 똑바로 섰을 때 서로를 축하했다. 내가 침을 흘리면 삼킬 때 축하했다! 못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는 너무 쉬웠다. 그런 건 너무 많았으니까.

좌뇌를 다친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내가. 회복에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모든 과제를 더 작고 단순한 과정들로 나눌 줄 아는 능력 덕분이었다. 일어나. 앉기 전에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고 뒤척이는 것, 보도를, 걸을 때 갈라진 틈을 밝아도 괜찮다고 배우는 것, 이런, 작은 성공들이 모이고 모여 궁극적인 성공이 되었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어 너를 해방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아울러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 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 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판단은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분노, 좌절, 공포 같은 감정이 몸 안에 차오르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감정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신경 고리에 접속하고 싶지 않다고 뇌에게 말했다.

 

언어를 통해 위쪽 뇌를 사용하면 뇌에 직접 말을 시켜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말할 수 있었다. 이게. 되자 이제 예전의 내 성격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감정적. 지유는 지루하리만치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력할 가지가 있었다.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 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었다. 외부의 그 무엇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나는 뇌의 산물이 아니라 나에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 프로그램(조바심, 불친절, 비난)에(조바심,불친절,비난) 접속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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