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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피엔스 - 집착과 번뇌로부터의 해방

by 마티아2002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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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번뇌와 집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을 찾고 있다. 그리고 신에게 기도한다. "번뇌와 집착의 원인이 세속적인 성취도 이루어 주시고 저를 열반에 천국에 들게 해 달라고" 전지전능하신 신은 어떤 답을 주실지 궁금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 불교

싯다르타는 아시람(힌두교 수행자)들을 방문해 구루들의 발치에 앉았지만, 아무도 그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지 못했다. 모종의 불만이 항상 남아 있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완전한 해방의 길을 찾을 때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번뇌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덕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의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집착

싯다르타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당신이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며 더 커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타마는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끔 훈련하는 일련의 명상기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우리 마음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온 관심을 쏟도록 훈련시킨다. 이 같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살생, 음행, 도둑질을 피하라고 했는데, 이런 행동은 반드시 집착(권력과 감각적 기쁨, 그리고 부에 대한)의 불을 지피기 때문이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열반은 문자 그대로 ‘불 끄기’란 뜻이다).

번뇌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고통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할 때 매우 분명해진다. 고통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불만스럽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운 일을 경험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즐거움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거나 더 커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를 몇 년씩 꿈꾸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너무 값싸게 안주했다고 느낀다. 심지어 용케 둘 다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리라.

집착과 번뇌로부터의 해방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집착에서 해방되었다면, 어떤 신도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일단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집착이 일어나면, 우주의 어떤 신도 그를 번뇌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불교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풍요나 정치권력 따위가 아니라 번뇌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불교도의 99퍼센트는 열반에 도달하지 못했고, 설령 언젠가 내세에서 열반을 이루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현세의 삶 대부분은 세속적 성취를 추구하는 데 바쳤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불교 분파들이 부처들과 보살들로 구성된 만신전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해탈할 능력을 지닌 인간(보살)과 비인간적 존재(부처)이지만 연민 때문에 해방을 포기했다고 했다. 아직도 불행의 덫에 빠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신을 숭배하는 대신에 많은 불교도들은 이런 깨달은 자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열반에 이르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할 뿐 아니라 세속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빌었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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